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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하는 불사조 ··· 찰나의 몸짓에 에너지 '뿜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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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하는 불사조 ··· 찰나의 몸짓에 에너지 '뿜뿜'
  • 변상섭 기자
  • 승인 2024.01.03 16: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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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보 김기창 作 태양을 먹은 새
김기창 作 태양을 먹은 새 (34.5x44.5cm 종이에 수묵 담채.1968)

불사조다. 막 땅에 박차고 날아 오르려는 듯 두리번거리는 자태다. 비상을 위한 찰나의 몸짓으로, 생동감과 에너지가 넘친다. 보고만 있어도 거선의 기관소리처럼 심장이 요동치는 느낌이다. 사혁(謝赫)의 '기운생동'이 이런 상황을 두고 한 말일게다.

운보 김기창(1913-2001)의 역작 '태양을 먹은 새(1968)'란 그림이다. 강렬한 붉은색에 힘찬 기운을 머금고 있어 새해를 송축하고 재앙을 막기 위한 세화(歲畵)로서 제격이다. 액막이 그림으로도 썩 어울린다.

적·황·흑·백색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이 그림은 빠르고 대범한 붓놀림과 강렬한 색채가 인상적이다. 운보가 그의 아내 우향 박래현과 뉴욕에서 머물던 시기에 그린 작품이다.

추상적 표현과 구상적 표현이 뒤섞여 있다. 미국 생활중 서구 앵포르멜의 영향을 받은 듯 하다. 운보는 생전에 이 작품을 "우주로 비상하여 우주 자체를 집어삼키고 싶은 내 심정의 표현"이라며 분신처럼 아끼는 작품이라고 했다. 자신의 작품 중 소중하지 않은 게 있겠냐마는 애착이 유난히 강했던 모양이다. 새 한 마리에 자신의 온갖 정력과 열정, 기운을 쏟아 부은 분신 같은 그림으로 내면의 자화상으로 봐도 무방할 듯하다. 태양을 삼킨 새의 배는 긴장감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팽팽하다. 잔뜩 부풀어 오른 배는 용광로처럼 단박에 펄펄 끓는 시뻘건 쇳물을 토해낼지 모를 정도로 긴박해 보인다. 붉은색 가운데 태점처럼 초고온 을 암시하는 흰색을 띤 부분이 그 징조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운보의 정열이며 예술혼이다. 태양을 삼키는 고통을 극복하고 새로운 장의 예술세계를 열어갈 것을 암시한 것이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새로운 기운과 무언가 하고자 하는 의욕이 샘솟듯 용솟음치고 생동감이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천문오행사상(天文五行思想)에서 붉은 새는 주작(朱雀)이다. 남쪽을 관장하는 수호신으로 봉황과 유사하다고 전해진다. 붉은 새를 총칭하기도 한다. '태양을 먹은 새'와 주작과의 연관성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새의 동세가 역동적이고 날렵하다. 반쯤 벌린 날개와 오른쪽으로 돌린 머리가 율동감과 안정감을 준다. 검정색 날개와 눈과 붉은색의 대비, 먹의 발묵과 번짐에서 동양적인 미가 흠씬 묻어난다. 날개와 다리를 감싼 엷은 푸른색 띠는 아우라처럼 신비감을 준다. 운보는 청각장애인이다. 세상과 소통이 제한적이다 보니 자신의 뜻과 욕구를 마음대로 드러내지 못했을 게 분명하다. 바로 그런 심상과 처한 현실을 한순간에 떨쳐내기 위한 방법으로 일필휘지로 붉은 새를 그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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